[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주말엔 K리그를 보러 가자!

입력 2024-04-16 18:25   수정 2024-04-17 00:10


겨울 스포츠가 막을 내리고 야외 스포츠가 개막할 무렵, 나는 설레기 시작한다. 축구광은 아니지만 저녁에는 K리그 경기중계를 기다리고, 새벽에는 프리미어 리그 중계를 눈을 부릅뜬 채 기다린다. 조명이 비추는 잔디밭은 마치 녹색 융단이 깔린 것 같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내 심장의 박동수는 빠르게 올라간다. 스물두 명의 선수들이 심판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안의 남성 호르몬이 미친 듯 소용돌이친다. 주심의 휘슬이 울린다. 공을 쫓아 야생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선수들은 숲에서 사냥감을 쫓는 초기 인류를 연상하게 한다.
전류처럼 흐르는 짜릿한 마음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는 트랙을 뛰고, 도약하고, 상대와 맞붙어 힘과 빠르기를 겨룬다. 또한 제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고 자기 극기의 정신을 키운다. 공을 갖고 하는 구기 종목은 필드에서 공을 차고 달리며 상대의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것으로 승부를 가른다.

스포츠는 전쟁의 폭력성과 살상력을 배제하고, 규칙과 규범을 작동시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승화시킨다. 축구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돼 인간 내면의 광기를 자극해 폭력을 낳기도 한다. 영국이나 독일의 축구 관중 중 일부는 훌리건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자주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 경기에는 승리와 환희와 패배의 쓰라림이 교차한다. 그 찰나 온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짜릿한 마음을 담아 나는 ‘축구 찬가’를 썼다.

“어린 시절 공을 차며 내가/ 중력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가/ 정강이뼈와 대퇴골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변동과 불연속을 지배하려는/ 발의 역사가 그렇게 길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초록 잔디 위로 둥근 달이 내려온다./ 달의 항로를 좇는 추적자들은/ 고양이처럼 예민한 신경으로 그 우연의 궤적을/ 좇고, 숨어서 노려본다./ 항상 중요한 순간을 쥔 것은/ 우연의 신이다. 기회들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왔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굼뜬 동작으로 허둥대다가는/ 헛발질한다. 헛발질: 수태(受胎)가 없는 상상임신./ 내 발은 공중으로 뜨고/ 공은 떼구르르르 굴러간다.// 마침내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들은/ 스물두 개의 그림자를/ 잔디밭 위에 남긴 채 걸어 나온다./ 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이것은 살육과 잔혹 행위가 없는 전쟁,/ 땀방울과 질주, 우연들의 날뜀,/ 궁극의 평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졸시, ‘축구’, 2007)
"내가 아는 건 다 축구에서 배웠다"
소년 시절, 나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노는 놀이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동안 운동장에서는 뽀얀 먼지가 일어났다. 혼자 운동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며 내 안에 차오르는 고독한 충만감을 누리기도 했다. 달리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맥박이 거칠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입안에서는 피 맛이 고였다. 이윽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운동장에 기절한 듯 누워 가늘게 눈을 뜨고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숨결이 가지런해지고 기분은 상쾌해졌다.

나는 달리는 가운데 고통과 행복감을 맛봤다. 나는 소년 시절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믿는다. 달리기를 그토록 좋아한 것은 어쩌면 내 유전자 어딘가에 원시 인류에게서 받은 질주 본능이 숨어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이방인’의 작가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돼 사망했다. 할머니는 집안 사정을 들어 카뮈의 중학교 진학을 반대했는데, 교사의 설득으로 겨우 입학했다. 카뮈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축구팀의 골키퍼로 활동하다가 결핵 발병으로 축구를 등지고 떠났다. 그가 축구에 대해 남긴 말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 축구에서 배웠다.” 카뮈의 말은 축구가 공을 차고 굴리는 기술과 기능을 넘어서서 참된 인격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수단이 돼야 함을 암시한다.
운동장에 나가 부딪치고 달리자
스포츠에서 승리에 이르는 과정의 숭고함은 선수들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헌신과 투지에서 찰나의 빛처럼 드러난다. 우리 모두의 자랑인 손흥민 선수의 왼쪽 발등에 얹혔다가 공중에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찰나! 흥분과 설렘은 삶에 활력소가 되고, 우울한 인생에 한 줌의 기쁨을 더한다. 승리하려면 훈련의 강도를 받아들이고 제 기량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에의 몰입과 집중, 승리에의 불타오르는 동기와 갈망, 전략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두뇌, 인내력과 순발력, 선수들 사이의 협력 등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취하는 보람은 승리가 전부일 수는 없다. 스포츠는 심신을 단련하고 이기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규율과 윤리, 책임과 협력,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습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축구가 거친 운동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축구선수의 몸동작이 발레 동작인 듯 우아해서 정말 놀랐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축구는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기쁨의 놀이고, 현대에 번성하는 가장 천진한 종교 중 하나다. 축구는 남자의 전유물도 아니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축구가 남녀 성별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임을 일러준다.

당신은 축구를 좋아하는가? 주말에는 K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을 찾아가 직접 관전하자. 그다음에는 운동장에 나가 몸을 부딪치고 공을 가로채 상대의 골대를 향해 달려보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며 공을 쫓아 전력으로 질주하자. 축구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시난고난하는 인생의 작은 괴로움 따위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악덕 채권자처럼 치근덕대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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